투자관련

파이코인 / -2700만원 손실 확정 / 5년의 실패 여정

jw-finance 2026. 4. 20. 17:05

한 때 제2의 비트코인이라 불리며 수천만 명을 줄 세웠던 파이코인.
 
최근 파이코인의 열광은 불신과 실망을 넘어 쓰레기로 바뀌었다.
 
스마트폰 채굴의 꿈, 파이코인은 나락갔다.
 
이 때 나락에 휩쓸린 찬일(가명, 25세)이의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아무런 비용없이 12000개의 파이코인을 채굴했던 찬일이는 어쩌다 나락에 가게 돼었을까.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2019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9년 3월
 
파이코인은 2019년 3월에 출시됐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찬일이도 당연히 파이코인의 정체를 몰랐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주식과 코인는 돈 놀이이며 도박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찬일이는 코인 투자나 주식 투자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2021년 2월
 
찬일이가 처음으로 파이코인에 대해 소식을 접한 것은 이쯤이었다.
 
파이코인은 당시 비트코인 놓친 사람들을 모아서 제2의 비트코인이라 입소문이 났다.
 
이는 커뮤니티와 단톡방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졌다.

특히 스마트폰만 있으면 돈이 안 든다는 점 때문에 누구나 출석 체크 하듯 채굴하는 문화가 형성됐다.
 
찬일이는 스마트폰에 파이코인 앱을 다운로드 받고 코인 채굴을 시작했다.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휴대폰 번개 모양 버튼을 누르던 수 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찬일이었다.
 
찬일이는 매일 꾸준히 빠지지 않고 파이코인을 채굴하기 시작했다.
 
파이코인에는 추천인 시스템이라고 다단계 아닌 다단계 시스템이 있었다.
 
친구를 초대하면 채굴 속도가 빨라지는 구조 덕분에 유저들이 스스로 영업 사원이 되었다.
 
이는 파이코인 커뮤니티를 폭발적으로 키웠다.
 
교회를 다니던 찬일이는 수 많은 교인들의 네트워크 망을 이용해 본인의 채굴 속도를 높였다.
 
파이코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호평일색이었고 강한 집단 믿음이 굳건해져갔다.
 
개발진이 스탠퍼드 박사 출신이라는 점이 엄청난 신뢰를 줬다.
 
"똑똑한 사람들이 만드니까 뭔가 다르겠지"
 
라는 믿음이 강했다.
 
"비트코인은 비싸서 못 사고 이건 휴대폰 버튼만 누르면 돼"
 
라는 논리가 먹혔다.
 
돈 한 푼 안 들고 버튼 한 번 누르면 코인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이 포모(FOMO)를 자극했다.
 
 
 
 
2022년 3월
 
2022년 3월 14일, 파이데이라는 명분으로 KYC 본인 인증의 대대적인 솔루션이 공개됐다.

그전까지는 일부 유저 대상 테스트만 하다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대량 인증 시스템이 가동됐다.
 
찬일이도 KYC 본인인증을 해야 오픈 메인넷이 열렸을 때, 즉 상장되었을 때, 파이코인을 팔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찬일이는 KYC 본인인증을 했고 약 두 달 만에 승인되었다.
 
인증 속도가 너무 느리거나 검토 중 상태가 몇 년씩 지속되는 유저들이 많았지만, 찬일이는 운이 좋았던 것이다.
 
 
 
2024년 9월
 
파이코인에는 락업 설정이라는 기능이 있었다.
 
메인넷으로 코인을 옮기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였다.
 
락업을 하게되면 채굴 속도를 높일 수가 있었기에 찬일이는 3년 100% 락업의 강수를 뒀다.
 
이때 3년 락업을 걸었던 것은 찬일이의 크나 큰 실수였다.
 
 
 
2025년 2월
 
드디어 전설 속의 이야기 같던 오픈 메인넷 전환과 공식 상장은 2025년 2월 20일에 이루어졌다.
 
일부 거래소에서 도둑 상장(IOU) 형태의 거래는 있었지만, 
 
유저들이 직접 채굴한 코인을 지갑에서 꺼내 거래소로 보내 팔 수 있게 된 진짜 상장일은 2025년 2월이었다.

OKX 등 주요 거래소에 정식 상장되면서 실제 현금화의 길이 열렸다.

하지만 찬일이는 '3년 100%'라는 락업 설정으로 3년 동안 묶여서 파이코인을 팔 수 없었다.
 
찬일이는 파이코인을 채굴한 이후로 파이코인에 대한 믿음을 단단한 시멘트처럼 굳혀왔다.
 
"파이코인은 상장하면 무조건 100달러 간다."
 
라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다.
 
최초의 스마트폰 채굴 코인이라는 점과 스탠포드 대학 출신이 개발했다는 점이 뭉쳐서 커뮤니티 사이에서도 100달러 간다는 믿음이 널리 전파됐었다.
 
광신도들이 하늘에 양손을 들고 파이코인을 외치고 있었다.
 
상장일 시초가는 1.8달러 부근이었다.
 
찬일이는 수중에 돈이 없었다.
 
배달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기에 모아둔 돈이 없었다.
 
결국 찬일이는 친구 형민이에게 손을 벌렸다.
 
찬일이는 12월까지만 열 달만 3000만원을 빌려주면 이자 5%까지 쳐서 갚겠다고 했다.
 
형민이는 찬일이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기에 고민 끝에 3000만원을 빌려주었다.
 
찬일이는 1.8달러 평단에 3000만원 어치 파이코인을 일괄 매수했다.
 
 
 
2025년 3월
 
파이코인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폐쇄형 메인넷에 갇혀 있던 물량이 시장에 풀리자마자 탈출하려는 매도세가 쏟아졌다.
 
매일 수백만 개의 토큰이 언락되는데 사주는 사람은 없으니 가격이 버틸 수가 없었다.
 
1.8달러에서 0.7달러까지 떨어졌다.
 
찬일이 계좌에는 한 달만에 -60%의 수익률이 찍혀 있었다.
 
원화 손실액만 1100만원이 넘었다.

형민이에게는 차마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찬일이는 1주일간 앓아 누웠다.
 
배달 콜도 모두 응하지 않고 송장처럼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정말 '가만히'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천장만 응시했다.
 
찬일이는 살면서 이렇게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걸어다니는 시체였다.
 
 
 
2025년 5월
 
시체에 피가 돌고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은 5월 12일 쯤이었다.
 
며칠 전부터 파이코인이 상승하기 시작하더니 1.6달러 부근까지 상승했다.
 
두 달간 앓아누웠던 찬일이는 곧 평단가 1.8달러에 도달하여 원금 회복이 될 것만 같았다.
 
이 때, 찬일이의 마음은 180도 바뀌었다.
 
"본전이 와도 절대 팔지 않을거야. 파이코인 100달러 간다!"
 
하지만, 이는 어리석은 마음가짐이었다.
 
1.6달러를 찍고 주가는 하염없이 밑으로 내리 꽂았다.
 
 
 
2025년 10월
 
파이 네트워크 운영진이 설거지를 했다는 의혹이 나돌기 시작했다.
 
미국 연방법원에 소송이 제기되었다.
 
파이 네트워크의 창업자 니콜라스 코칼리스와 운영사인 소셜체인을 상대로 한 집단 소송이 접수되었다.
 
운영진이 약 20억 개의 파이 토큰을 비공개로 매도하여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것이다.
 
파이코인은 미친듯이 폭락했고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때를 회상하며 찬일이는 말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 정도 마음 아플까..? 가슴이 답답하고 너무 힘들었다.."
 
 
 
2025년 12월
 
찬바람 불던 12월 말, 찬일이는 모든 파이코인을 매도했다.
 
매도 평단가 0.2 달러. 계좌 평가 손실률 -90%.
 
원화 손실액 -2700만원.
 
찬일이는 수중에 남은 300만원을 형민에  입금했다.
 
"정말 미안하다, 형민아. 투자했던게 잘못해서 일단 300만원만 갚을게."
 
형민이는 찬일이로부터 지난 10개월간의 사연을 들었다.
 
"일단 건강 추스르고, 천천히 갚아도 돼."
 
그날 이후로, 찬일이는 배달일을 통해 매월 100만원씩 형민이에게 입금하고 있다.
 
찬일이는 형민이에게 말했다.
 
"형민아, 너한테 돈 다 갚고나면 떠날거야."
 
형민은 물었다.
 
"언제? 어디로?"
 
찬일은 대답했다.
 
"년도는 모르겠어. 날짜는 확실해. 3월 14일. 동해 바다로 떠날거야. 오징어 잡으러 갈거야."
 
찬일이 마음 편히 동해 바다로 떠나는 그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 공짜 점심은 없다
# 빚 내서 투자하지 마라
# 시장의 광기를 경계하라
 
 
** 사실에 기반하여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